<12>제법공상과 물리학

- 色도 法도 공한 것이 자연의 본래모습-
- 현대 물리학도‘제법공상’원리 수긍-

‘색수상행식 역부여시’다음 반야심경은 ‘사리자 제법공상 불생불멸…’하고 어떻게 모든 것이 공(空)한지를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반야를 터득한 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모든 것의 근원은 그저 공할 뿐이며 생겨나는 것같이 보이지만 생겨난 것이 없으며, 없어지는 것같이 보이더라도 없어진 것이 없다고 설명한다. 물리학은 반야와는 상관없고 모든것을 오관으로 보고 분별지로 판단하지만 제법공상에 수긍한다. 또한 불생불멸은 물리학의 기본법칙이다.

지금까지 여러번 색과 공에 관해 물리학적인 관점에서 얘기했지만 모두 물리적인 진공과 물질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생성소멸에 관해 얘기했을 뿐 물리적인 법칙이 공한 모습에 관해 논하거나 언급한 적은 없다. 이제 법에 관해 얘기하자면 물리학의 법칙마저 사실 공한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제법공상은 여러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지만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일정한 법칙이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 현대물리학은 이 글자그대로의 뜻을 뒷바침하고 있다.

제법공상의 직접적인 뜻은 색즉시공과는 또다른 것이니 자세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일상적 경험의 세계에서 볼 때 우리 앞에 나타나 있는 자연은 질서정연하게 일정한 법칙을 따라 움직이는 것같이 보인다. 달은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정해진 궤도를 돌며, 지구도 같은 법칙에 의해 정해진 궤도를 따라 태양주위를 돌고 있다. 지구와 달뿐만 아니라 모든 별과 모든 물체가 움직일 때는 일정한 법칙에 따라 정해진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빛도 한점에서 다른점으로 보내면 두점사이의 최단 거리를 따라 움직인다. 달이 지구를 떠나 여기저기 아무데로나 돌아다니다 돌아온다는 법도 없고 빛이 최단거리가 아닌 다른 경로를 통해 이리저리 꾸불꾸불 움직인다는 법도 없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미시적 세계에서 볼 때는 빛이 최단거리를 따라 움직인 것이 아니다. 빛은 제멋대로 움직인다. A라는 점에서 B라는 점까지 빛을 보내면 A와 B사이의 무한히 많은 모든 경로를 따라 일정한 확률을 가지고 움직인다. 아니 움직인다는 말도 적당한 표현이 아니다. 무한히 많은 경로중 어느 특정한 경로를 따라 움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직선거리를 따라 움직일 확률도 있고 빙둘러 다른 경로를 따라 움직일 가능성도 있고 또다른 경로를 따라 움직일 확률도 있을 뿐이다. 모든 경로마다 빛이 지나 올 가능성이 있을 뿐 빛은 이중 어느 하나의 경로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동시에 가능한 모든 경로를 따라 움직인 것도 아니다. 빛입자 하나가 여러개로 나누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입자가 하나의 경로를 따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해서 동시에 여러 경로를 따르지도 않으면서 빛은 A에서 B까지 도달하는 것이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빛뿐만 아니라 모든 소립자가 그렇게 행동한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A라는 점을 출발한 빛이나 입자가 B라는 점에서 불쑥 나타났다고 해야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경로를 따라 왔다는 가능성을 합쳐 놓으면 일정한 궤도를 따라 움직인것처럼 보인다. 빛의 경우 직선거리를 따라 움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어느 특정한 경로를 따라 움직인 것이 아닌데도 거시적으로 보면 일정한 법칙을 따라 정해진 경로나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것같이 보이는 것이 자연의 진정한 모습이다. 이러한 현상을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어떤 물리학자는 “일정한 법칙이 없다는 것만이 진정한 법칙이다”라고 말했는데 적절한 표현이다. 이 말을 반야심경이 표현한 제법공상과 같은 뜻으로 받아들인다고해서 무리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리학의 입장에서 보면 법(法)마저 공한것이다. 제법공상은 분명히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지만 글자 그대로 해석 해도 물리학자들이 자연을 기술하는 방법과 일치한다.

색(色)도 공하고 법(法)마저 공한것이 자연의 모습이다.

1996-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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