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불구부정

-전체를 하나로 볼 수 있는 반야의 경지-
-현대 물리학도 ‘일체 즉 유심조’해설-

반야심경은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세계에 관해 설명한 글이 아니다. 관자재보살이 얻은 반야지로 볼 때 보이는 세계를 설명한 글이다. 따라서 오관으로 보고 느끼는 것을 분별지로 판단하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글이 아니다.

현대물리학이 자연의 이중성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한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중성의 발견 덕분에 경전이 의미심장한 내용을 설하고 있다는 것을 물리학을 통해 짐작할 수는 있지만 경전이 설하고 있는 대부분의 내용은 물리학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을 넘어서있다. 심경이 말하는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이라는 말중 불구부정은 물리학을 떠나 신앙이라는 새로운 각도에서 살펴보아야할 부분이다.

깨끗하지도 더럽지도 않다는 것이 불구부정의 직접적인 뜻이라면 이말은 생명을 유지하려는 생명체의 본능과 어긋난다. 생명체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먹이를 얻고 알맞은 환경에 있어야 하는데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하거나 알맞은 것은 좋아하고 깨끗하게 보며 생명을 위협하거나 건강상 좋지 않은 것은 싫어하고 더러운 것으로 볼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구부정은 보통사람의 차원을 넘어선 반야의 차원에서 볼 때 그러하다는 뜻이다. 반야의 차원은 물리학뿐만 아니라 일체의 학문적 접근을 불허하는 신앙과 깨달음의 차원이지만 할 수 있는데까지는 학문적 접근을 해볼 필요가 있다.

원자(原子)의 차원에서 볼 때 나고죽고 썩는 모든 것이 단지 원자들의 배열만 바뀌는 것일 뿐 변한 것이 없기에 생물 무생물을 통털어 물질계 전체를 놓고 보면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이라는 말이 이상하지 않게 들릴 수도 있지만 생명체 하나의 입장에서 볼 때는 불구부정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경전이 말하는 바는 전체를 하나로 보라는 뜻이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생명체 하나 하나는 분리될 수 없는 전체를 보지 못하고 아상에 집착하여 꿈을 꾸고 있다는 뜻이다. 불구부정은 일체즉 유심조의 입장에서 살펴보아야 할 말이다. 전체가 하나일 수밖에 없는 실험적인 증거가 실제로 있다.

사람이 보는 것은 결국 자기가 창조하여 보는 것이라는 현대물리학의 해설을 유명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죽을때까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현대물리학의 해설에 치명타를 가할 수도 있는 예를 아인슈타인은 포돌스키(PodlsKy)와 로젠(Rosem)과 함께 제시하였다. 이것을 EPR실험이라고 부르는데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먼저 결과를 얘기하겠다.

EPR이 제시한 실험은 여러가지로 까다로운 점이 있어 1982년에야 실제로 실험을 하였는데 아인슈타인이 틀렸다. 전체가 하나이며 사람은 자기가 보는 것을 창조해서 보는 것이다. 현대물리학의 해설의 옳은 것이다.

전체가 하나이며 일체즉 유심조가 옳다고 하더라도 전체를 하나로 볼 수 있는 눈이 있느냐 없느냐 또 그런 눈 반야지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얻느냐하는 것은 물리학이 대답할 수는 없다. 아니다. 괴텔의 불완전성 정리에 의하면 옳고 그름을 따지는 분별지로는 결코 있는게 없는지도 알아낼 수 없고 있다하더라도 얻어낼 수 없다. 반야지가 있고 그것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신앙의 차원이다. 반야지에 관한 것은 학자들이 논할 수 있는 영역 저편에 있다.

아(我)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전체를 하나로 보고 일체즉 유심조라는 사실을 궤뚫어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불구부정은 당연한 말이다.

생멸이 없고 아(我)가 없는 데 거기 무슨 깨끗하고 더러운 것이 있을 수 있겠으며 거기에 무슨 좋고 나쁜 분별이 있을 수 있겠는가?

말로 할수 있는 일체의 경지를 넘어서는 눈이 있음을 믿는다면 불구부정을 글자그대로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물리학은 전체가 하나 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199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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