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색수상행식

심경의 관점 “我란 객관적 실체는 없다”
상대성이론 “我떠나 현상 논할 수 없다”

‘…시고공중 무색 무수상행식…’이라고 설함으로써 색수상행식의 오온이 다 없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눈앞에는 삼라만상이 보는 바와 같이 전개되어 있는데 경전은 이 모든 것이 없다고 말한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루 같은 것이요 이 신기루를 보고 느끼는 정신작용도 모두 신기루같은 것이라고 한다. 수상행식의 정신작용에 대한 주체는 아(我)다. 그런데 경전은 수상행식의 정신작용이 다 신기루같은 헛것이라고 한다. 경전은 ‘아’를 객관적 실체로서 인정하지 않는다. 무색이고 ‘아’가 헛것이니 우리가 일상의 경험적 세계에서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은 결국 존재하지도 않는 ‘나’가 존재하지도 않는 세상을 보고 느끼는 것이 된다. 경전은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있다.

경전이 말하는 것, ‘색도 없는 것’, ‘아도 없는 것’이라는 말의 뜻은 허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분별지로 보는 물질계와 분별지로 판단한 ‘아’가 없다는 것임은 물론이다. 주와객으로 나눌 수 없는 것을 ‘아(我)’에 집착하여 아를 내세우다보니 아에 대하여 객이 나타나 삼라만상을 전개한 것이 우리가 보는 물질계인데 이 물질계의 본질이 무엇인지 따지고 있는 것이 물리학이다. 따져 본 결과 현대물리학의 토대가 되는 양자역학에서는 객관적 실체를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그렇게 보도록 창조해서 보는 것이라고 양자역학은 설명하는 것이다. 물리학은 분별지로 판단하는 것이므로 공(空)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색(色)이라고 할만한 실체가 따로 없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심경의 내용을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양자역학은 시공간의 성질에 관해서는 특별한 연구를 하지 않았다. 시공간의 성질에 관해 무엇인가를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상대성이론이다.

동시성, 시간의 길이, 공간의 길이 이 모든 것이 그것들을 측정하는 관찰자의 입장에 따라 다 다르게 나타나고 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다 옳은 것이라는 것은 이미 설명하였다. 이 사실, 모든 것이 다 상대성을 갖는다는 사실은 관찰자와 관찰대상은 분리시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색이 무엇인지 무색이 무엇인지를 논하기 전에 우리가 관찰하고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로켓을 타고 일정한 속도로 달리고 있는 사 람과 지구상에 남아 있는 사람이 측정한 시간이 다르다고 지난번에 설명하였는데 언뜻 생각하면 여기엔 모순이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소위 쌍둥이의 역설이라는 것이다.

일란성 쌍둥이가 하나는 A라는 로켓을 타고 다른 하나는 B라는 로켓타고 일정한 속도로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A는 B가 움직이고 있으므로 B에 있는 시 계가 천천히 움직이는 것으로 관측할 것이다. 그러나 B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는 정지해 있고 A가 움직이는 것이므로 A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으로 관측할 것 이다. 상대성이론은 둘다 옳다고 하였으므로 둘이 만났을 때 서로의 시간을 비교 하면 어떻게 될까?

여기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관측자의 운동상태를 알아야 한다. 서로 만나서 비교 하려면 누군가가 가속운동을 하여 상대방의 로켓에 대해 정지하여야 한다. 이때 서로의 시간을 비교하면 가속운동을 한 사람의 시간이 느리게 흐른것으로 판명된 다. 가속운동을 하지 않고 서로를 관측하면 서로 상대방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으로 보이고 이것도 옳다. 물론 이 경우엔 쌍둥이가 서로 만나 누가 더 늙어 있 고 누가 더 젊어져 있는지 비교할 수는 없다.

상대성이론이 말하는 것은 ‘아’를 떠나서 현상을 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물리학의 법칙마저 ‘아’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색은 아를 떠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색을 떠나 수상행식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상대성 이론이 말하는 내용이다. 색이 따로 없다면 아는 따로 있는 것일까? 이것은 분별지를 바탕으로 하는 물리학이 답할 수 있는 성질의 물음은 아니나 경 전은 그렇다고 말한다. 그것을 알려면 반야지를 얻으라고 한다.

199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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