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실(實)과 허(虛)

- ‘물질-에너지’같은성질 표현만 달라-
- 오관으로 보는것 ‘我’의 집착일뿐 -

지금까지 현대물리학의 근본이 되는 양자역학적 물질관에 덧붙여 우주·물질에 대한 물리학의 또다른 관점인 상대성이론의 일부분을 설명하였다. 경전이 설하는 무색 무수상행식에 대해 상대성 이론은 색과 아(我)는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물리학은 수상행식의 주체인 아(我)에 대해 직접적으로 무엇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아가 보는 색이 아를 떠나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색을 보는 아도 결국은 하나의 집착에 불과한 것이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뒷바침하고 있다. 색(色)이란 결국 아(我)가 만들어 낸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사람은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것을 실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체가 운동하고 변하여 생기는 여러가지 현상은 실체가 아닌 신기루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실체와 현상은 실(實)과 허(虛)일까? 상대성이론은 허와 실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 E=mc2이 바로 허즉실이요 실즉허를 뜻한다. 차근차근 따져보기로 하자.

E=mc2은 질량이 있는 입자가 사라지는 대신 에너지가 생겨나고 에너지가 변하여 질량을 가진 입자로 나타날 수 있음을 뜻한다. 아니 그것보다 모두 질량을 가진 입자가 에너지의 특수한 형태임을 뜻한다.

물리학에서 에너지라고 할 때 여기에는 어떤 특정한 형태가 없다. 물체가 운동하면 거기엔 운동에너지가 있다고 말할 뿐이다. 질량을 가진 물체를 실체라고 할 때 이 물체가 빠르게 움직이면 보다 많은 운동에너지를 갖는다하고 느리게 움직이면 보다 적은 운동에너지를 갖는다할 뿐 빨리 움직이든 느리게 움직이든 실체에 무슨 변동이 있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저 운동상태가 바뀌었다고 말할 뿐이다. 즉 실체가 나타내 보이는 현상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운동에너지란 단순히 현상이 바뀌는 정도에 대한 척도일 뿐이다. 또한 지상에서 물체의 높이를 바꾸어 주면 낮은 곳에 있을 때는 실체가 갖는 위치에너지가 적으며 보다 놓은 곳에 있을 때는 보다 많은 위치에너지를 갖는다고 말한다. 이 경우에도 위치에너지는 실체인 물체의 위치가 변한 것을 나타내는 하나의 척도일 뿐 실체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일상경험의 세계에서 보고 느끼는대로 물질을 실체라고 하는한 에너지는 허상일 뿐 실체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시공간의 성질을 연구한 결과 에너지가 물질로 나타날 수 있음을 보였다. 바로 E=mc2은 상대성이론에서 유도한 것이다.

현상에 따른 허상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는 에너지와 실체라고 생각해 오던 물질이 사실은 같은 것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상대성이론이 말해주고 있으며, 이 사실은 실험적으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검증된다. 우리가 일상적 경험의 세계에서 허와 실로 나눈 것이 ‘아(我)’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 중 어느 것이 옳다는 법이 없고 다 옳다는 것이 상대성 이론이 뜻하는 내용이다.

사람이 오관으로 보고 느끼며 분별지로 판단한 것은 결국 ‘아’의 고집에 불과한 것이다. 한꺼풀 벗기면 새로운 것이 나타나고 또 한꺼풀 벗기면 또 다른 것이 나타난다. 반야심경은 사리불에게 이것을 가르키는 것이다. 네가 보는 모든 것은 네 고집에 불과할 뿐 그것이 그대로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가리킨다. ‘…시고공중 무색 무수상행식…’은 네가 오관으로 보는 모든 것은 네가 그렇다고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진리는 주와 객을 초월하여 반야지로 비출때만 나타난다는 것을 심경이 설하는 것이다.

물리학은 반야지가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말할 수 없으나 분별지로 판단해 본 결과는, 적어도 분별지 내에서는 심경이 말하는 내용이 옳다는 것을 말해준다.

199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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