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시대신주

바른믿음과 말은 밝고 신비한 진언
의식과 무의식 벽 허문 ‘空’ 체득한 경지

과거 현재 미래를 통털어 진리를 깨우친 모든 부처님은 반야에 의해 궁극적인 지혜를 얻었다고 설한 후 경전은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라고 설한다. 반야바라밀다는 크게 신비한 주문이요 밝은 주문이며 더 이상 비할 데 없는 높은 주문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말하는 주문은 마술사가 마술을 부릴 때 중얼거리는 소리를 뜻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이중성을 뛰어 넘는 지혜가 있음을 믿고 마음에 확신을 심으라는 뜻이다. 그리고 믿음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물론 이때의 믿음은 맹신이나 미신과는 다르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최고로 치고 말로써 따지는 알음알이를 쓸데없는 짓이라고 하여 ‘직지인심 견성성불 불립문자 언어도단’이라는 말을 쓰면서 문자를 모르고도 깨우친 육조 혜능선사의 예를 들면서도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전을 하늘같이 떠 받든다. 이것은 단순논리와 일상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분별지의 한계를 가리키고 분별지로써는 보리에 이를 수 없음을 가르치는 것이지 논리에 맞지도 않는 것을 주장하거나 터무니없는 것을 믿으라는 뜻이 아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이 올바른 믿음을 갖고 바르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분별지에 의한 판단이 꼭 필요하다. 그래서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경전이 필요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경전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인 것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없이 달을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알음알이 지식을 경계하는 것은 손가락을 달인줄 알고 머무르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지 분별지에 의한 사리판단이 무조건 틀렸다는 뜻이 아니다. 분별지로 따지고 따져 분별지의 한계에 이르렀을 때 이것을 뛰어 넘어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경전이 말하는 것은 이때 바른 믿음을 갖고 마음속에 신념을 확고하게 심으라는 뜻이다.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가 뜻하는 것은 ‘이제 내가 분별지의 한계를 알았으니 이에 머물지 않고 이 한계를 넘어 반야의 세계가 있음을 믿고 이를 달성하리라’하는 신념을 깊은 마음속에 심어두라는 뜻이다.

‘말이 옥(玉)이라’는 속담이 있다. 이것은 말한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인데 깊은 뜻을 담고 있는 말이다. 우리가 믿고 생각한 것은 마음 속 깊은 곳에 기록되어 인격의 바탕을 이루고 다음의 행동을 결정하게 된다. 바르게 믿고 행할 때 믿음이 깊을수록 큰힘을 발휘하게 된다.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들이 가끔 사용하는 죄면요법에서 나쁜 습관을 없애거나 무의식속에 감추어진 사실을 알아내는 것도 말로써 암시를 주므로써 이루어진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는 마음을 다스리는 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경전은 반야바라밀다는 신비한 주문이라고 한 것이다.

인간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은 이 주문을 받아들이는 창과 같다. 사람에겐 수의근과 불수의근이 있어서 수의근은 의식으로 통제하고 내장의 운동은 무의식이 통제하게 되어 있지만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있는 것이 호흡이다. 아무 생각없이도 호흡을 할 수 있지만 생각으로 조절할 수도 있다. 불교의 선승들은 일찌기 이것을 깨닫고 호흡을 조절하므로써 마음을 통제하는 법을 알아내었다. 그것이 좌선이요 참선이다. 가늘고 긴 호흡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평안하게 한 가운데서 화두를 들거나 염불을 함으로써 의식과 무의식의 벽을 허문 것이다.
‘악’하는 한소리로 얻은 것은 바로 의식과 무의식의 벽이 허물어진 한 마음을 얻는 것이다. 즉 마음의 주인이 된 것이다. 이제는 ‘아’가 무의식의 통제를 받는 허수아비가 아니라 ‘아’가 마음의 주인인 것이다. 이때의 ‘아’는 집착이 만든 허수아비가 아니라 이중성을 초월해 ‘공’을 체득한 마음인 것이다. 이것은 반야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진 것이기에 경전은 반야바라밀다를 신비한 주문이라고 한것이다. 그렇다!
바른 믿음과 말은 신비한 주문이다. 이중성을 초월하여 ‘공’에 이르게 하는 신비한 주문이다.

1996-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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